우리는 문제가 발생이 되면 흔히 우리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탓하거나, 혹은 다른사람을 바라보고 원망을 하거나, 또는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해결책이자 안전책은 믿음의 주요 또한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게 되면, 마음의 평강이나 우리에게 소중한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구원의 주를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보거나 혹은 남을 바라보거나 환경과 형편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을 하기 전, 열째 재앙의 밤에 이스라엘 각 가정의 정자들이 자기를 바라보았다면 그들은 구원을 확신할 수가 없어 두려움에 떨었을 것입니다.
오직 문절주에 뿌려진 어린 양의 피를 바라볼 때만 그들은 자기의 구원을 확신할 수가 있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 피를 볼 때에 ❜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멸망의 천사가 그들의 집 앞에 지나갈 때, 그들은 구원을 의심하면서 두려워하며 기다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순간 구원은 이미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은 지금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시대의 소망 388쪽에 있는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를 그 진정한 품성 그대로 보고 그분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자들은 영생을 얻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믿음으로 마음에 성령을 받아들일 때 곧 영생이 시작된다. ❞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의 날까지 우리의 구원을 의심하면서 불안해하며 살 필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각 가정의 정자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곧 애굽을 떠나게 될 그 새벽을 들뜬 마음으로 기다렸을 것입니다.
❝ 애굽을 떠날 때까지 난 안심할 수가 없어, 언제 죽을지 내가 어떻게 알아! ❞ 이렇게 생각하였다면 그들은 애굽을 떠날 준비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는 생각 속에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 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구원을 확신하는 사람만이 그 마음 가운데 평안함을 가지고 참된 의미에서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고 있습니다.
실시간 TV나 유튜브 채널로, 각종 세상의 소리와 정보들이 홍수처럼 우리의 시야에 쏟아져 들어오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 수많은 정보들이 우리의 영혼 속에서 침투해 들어와 우리의 영혼을 오염시킬 수 가 있고, 때로는 그 미디어에 중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식과 들려오는 각종 매체의 주파수에 이끌려 하늘의 소리와 주파수를 놓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늘의 소리는 어제나 세미한 소리입니다.
늘 그 하늘의 주파수에 맞추고 살아가는 사람들, 곧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그분을 바라보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들입니다.
선지자 엘리야가 하늘의 채널에 그의 믿음이 고정되어 있었을 때에는,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기도하자 3년 반 동안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다시 기도하자 억수같은 비가 황폐한 땅에 쏟아져 내렸습니다.
갈멜산 위에서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에 그는 의연하였습니다.
그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ㄴ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의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
온 이스라엘에 엘리야만큼 강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왕도 백성들도 그에게 압도되었습니다.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엘리야가 하늘의 패널을 놓쳐버리고 이세벨이라고 하는 채널에 붙잡히자 그는 여지없이 초라하게 무너지고 맙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 대신에 자기의 형편을 보고 40일을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하늘의 채널을 놓쳐버린 그는 전혀 엘리야 답지 않게 무기력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는 도망치면서 죽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백성들이 다 죽고 자기만 남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도망가는 것이라고 변명을 하여 40일을 도망쳐 굴속에 숨어 버립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에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채널을 놓쳐 버리면 어느 누구나 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엘리야의 도망치는 이 일로 인하여, 온 이스라엘에 하나님께서 욕을 당하셨습니다.
그 위대한 갈멜산의 사건도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약한 엘리야를 하나님께서는 벌하지 않으시고, 40일을 같이 동행하시면서 그를 먹이셨습니다.
천사가 따라가면서 기지한 엘리야에게 물과 떡을 공급하여 줍니다.
그럼에도 엘리야는 마음을 돌이키지 않고 다시 일어나 도망을 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도망가 굴속에 숨어있는 그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다행히도 엘리야가 40일 만에 그의 채널을 하늘에 맞추가 그는 다시 강력한 엘리야가 되어 이스라엘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사명을 마치고 하늘로 승천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엘리야의 경험 속에서 하늘에 채널을 맞추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 오늘의 말씀 한목사님 말씀 중에

─ 그림출처 : <a href='https://pngtree.com/so/항공'>항공 png from pngtree.c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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