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예언의 역할과 예수님
본문: 베드로후서 1장 19절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베드로후서 1장 19절)
모든 국가의 전문가들은 군인들의 전투력을 증강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합니다. 이스라엘 육군에서도 어떻게 하면 군인들의 행군 능력을 최대한 높을 수 있을까? 그것을 실험하였습니다. 그들은 실험 대상이 된 군인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각각에 1백 킬로미터 행군을 시겼습니다. 그런데 한 그룹에겐 행군할 거리와 스케줄, 목적지 등 이런 것들에 대한 정보를 전혀 주지 않은 채 단지 명령에 따라 행군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그 그룹에 속한 군인들은 전혀 아무것도 모른 채 명령에 따라서 행군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출발한 다른 그룹의 부대원들에겐 모든 정보를 알려 주었습니다. 출발 일자, 도착 일자, 행군 거리와 행군 경로, 그리고 심지어 휴식시간과 식사시간 뿐만 아니라 야영 지역까지도 상세하게 기록하여 유인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군사 전문가들은 군인들이 작전 내용에 대해 이미 알고 있을 때와 모르고 있을 때 나타나는 그 차이점을 알아보고자 한 것입니다.
결과에서는 큰 차이가 났습니다. 똑같은 거리를 행군하였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명령에 따라 움직인 부대원들 중에는 40퍼센트가 낙오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출발한 부대원들 중에는 한 사람의 낙오자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현실에 대해 미리 알고 있을 때, 자신의 체력을 유지하여 나가는데 큰 힘이 될 뿐더러 이것은 전투력을 증강시키는 데 있어서도 튼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전문가들을 통해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전투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은 큰 힘 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예언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예언을 알고 있는 백성과 모르는 백성 사이에는 미래에 여러 가지로 큰 차이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최종 목적지인 하늘나라를 가는 행로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어 예언을 몰랐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이 도중에 하차하게 되는 일도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예언을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후서 1장 19절에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베드로후서 1장 19절, 개정)
이 예언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마치 우리가 어두운 밤길을 그냥 걷는 것과 등불을 가지고 가는 것과의 차이와 같습니다. 캄캄한 밤길을 걸어갈 때, 등불이 없으면 걷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앞에 등불을 들고 걸어가면, 발이 가고 있는 길을 다 보고 있기 때문에 안전하게 걸어 갈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정말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이 불안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예언이라고 하는 등불은 우리의 미래를 환히 비추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혼잡하고, 위험하고, 아무리 어두워져 있어도, 예언을 가진 백성들에게는 미리 그것을 알고 대처하여 나갈 수 있기 때문에 구원의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엇이 일어날지 어둡고 혼란한 이 세상에서 예언이 우리의 앞길을 인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예언은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네비게이션과 같습니다. 내가 어느 목적지를 찾아가고자 하지만 길을 잘 모를 때, 그 네비게이션만 보고 따라가면 정확히 나를 그 목적지에 데려다 줍니다. 예언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는 코로나 19를 경험하면서 코로나 19 이후를 더 걱정하고 있습니다. 경제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를 염려하고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미래에 대하여 근심하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의 길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인 예언의 말씀을 따라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미구에는 마지막 목적지인 하나님 나라에 도착하게 되었음을 알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이 마지막 시대에 예언을 아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훨씬 더 깊이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전에 없이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 다니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빛이 특별히 마지막 때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 ... 신약 성경의 마지막 책은 우리가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는 질리고 가득 차 있다. ...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예언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그것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 요한계시록에 그 순서에 따라 주어진 엄숙한 기별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마지막 사건 15-16)
겔 3:17에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겔 3:17). ‘내가 너를 파수꾼으로 세웠다’고 말씀합니다.
“파수꾼은 밤의 시간을 알아야 한다. … 그들은 하나님의 날을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세상에 임하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큰 날을 위하여 준비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시간은 귀하다. 미래를, 불멸을 위하여 준비해야 하는 은혜의 날이 몇 날 남지 못하였다. 우리는 시간을 아무렇게나 소모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의 겉만 핥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교회증언 6권 407)
파수꾼이 일하는 시간은 밤의 시간입니다. 밤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밤에 졸아서도 안 되고, 자고 있어도 안 됩니다. 그리고 파수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금이 몇 시인지, 어느 경점을 지나고 있는지 그것을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누가 지금 시간이 어찌 되었느냐고 물으면, 즉시로 그 밤의 경점을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 파수꾼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어두운 밤 같은 이 세상에서 밤의 시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바로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미리 알려 주신 것입니다.
암 3:7절에 보면,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끊임없이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모든 계획에는 반드시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말씀하시고 실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 42:9절에도 보면,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십니다. 그래서 종말을 처음부터 다 보고 계십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날 지를 미리 다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될 일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미리 말씀하시고 실행하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예언이라고 합니다.
파수꾼은 이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 역사의 어두운 밤의 시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닥칠 일까지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실 때에 주로 사용하시는 원리가 예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예언으로 통치하시는가? 그 이유가 요 13:19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요 13:19, 개역). 주님께서는 우리로 믿게 하기 위해서 예언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연약한 믿음을 더욱 더 신뢰할 수 있도록 이 예언을 통해서 이 지상에 있는 나라를 섭리하고 통치하고 계십니다.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벧후 1:19에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 1:19)
그런데 오늘 분문 말씀에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어떻게 주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입니다. 샛별은 누구를 상징합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언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물론 마지막 일어날 사건들에 대해서 미리 알고 있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데 그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아는 것이 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꾸 환경과 마지막 사건들을 미리 바라봄으로 믿음을 굳게 하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미리 알고 있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 때가 가까이 이르러 왔다고 알려주는, 그래서 우리가 세계 역사의 마지막에서 어느 경점에 살고 있는 지 그것을 알려주고, 믿음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 주신 하나의 신호와 경고에 불과한 것입니다. 구원은 사건을 바라보는데 있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는데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우리는 다 옛 뱀에 물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죄의 독에 감염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대에 달린 구리 뱀을 보고 살아났던 것처럼,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높이 들리신 그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바라보는데 있습니다.
“ …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 1:19). 샛별,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보여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결코 예수를 바라보는 자를 돕지 아니하신 채 버려두지 않으신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물을 가지고 와서 그 영혼에게 보여 준다. 만일 그리스도께 눈을 고정시킨다면 성령의 역사는 그 영혼이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아질 때까지 쉬지 않는다.”(시대의 소망 302)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가 날마다 성령의 은혜로 주님을 바라봄으로, 주님과의 관계를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바르게 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만일 그대가 오늘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다면,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오늘 오셔도 준비된 것이다.”(원고 36, 1891)
-- 4월25일 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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